전기화물차는 친환경과 비용 절감을 앞세워 화물운송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과다경쟁’과 ‘영세 사업자 몰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기화물차 도입이 화물업계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왜 과당 경쟁과 도산 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기화물차가 불러온 게임의 규칙 변화
전기화물차는 연료비와 정비비 절감을 통해 장기적으로 운송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됩니다. 전기 구동계는 구조가 단순하고 소모품이 적어 엔진오일·미션오일·각종 필터 등 유지보수 부담이 줄어들고, 급등하는 경유 가격에 비해 kWh당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톤·킬로미터당 에너지 비용이 내려가는 구조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형 택배사나 물류기업은 전기화물차를 “단가 경쟁력 + ESG 이미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비용 경쟁력’이 결국 운송 단가 인하 압박으로 직결된다는 점입니다. 대형 화주사는 전기화물차를 도입한 대형 운송사와 계약하면서 “친환경+저단가”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곧 시장 전반의 운임 하락 기준을 새로 깎는 역할을 합니다. 아직 전기화물차를 도입하기 어려운 중소 운송사업자·개별 화물차주는 이 새 기준을 따라가지 못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투자비와 ‘보조금 의존형 진입 러시’
전기화물차는 아직까지 동일 급의 디젤 트럭보다 차량 가격이 2배 안팎 더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배터리 가격이 차량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대형 상용 전기차는 배터리 용량이 크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가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각국 정부는 구매 보조금, 세제 지원, 통행료 할인, 공영차고지 우선 배정 등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인센티브가 강하게 걸릴수록 단기적으로는 ‘전기화물차 진입 러시’가 일어납니다. 특히 신규 진입자(플랫폼 기반 배송, 스타트업 물류딜리버리)와 기존 디젤 차량을 운행하던 1톤·소형 화물차주들이 “보조금 덕분에 초기 부담이 줄어드니 한 번 들어가 보자”는 심리로 대거 시장에 뛰어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장기적인 운송 수요·단가·충전 인프라·배터리 감가를 충분히 계산하지 않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진입한다는 점입니다.
운송 단가 덤핑과 ‘출혈 경쟁’의 가속
전기화물차를 도입한 사업자는 고정비 부담(대출 상환, 리스료, 배터리 감가)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차량 가동률을 높여야 합니다. 디젤 트럭보다 주행비용이 낮으니, 단가를 낮추면서도 “그래도 남는다”고 계산하기 쉬운 구조도 한몫합니다. 이때 시장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신규 전기화물차 사업자가 기존 운임보다 낮은 단가를 제시해 물량을 확보
- 화주사는 친환경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전기화물차 사업자에게 물량을 몰아주거나 운임 인하를 기존 사업자에게도 요구
- 기존 디젤 화물차 사업자는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운임을 맞추고, 수익성은 한계 수준까지 떨어짐
- 일부 사업자는 고정비를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고 추가적인 운임 인하를 감행하면서 ‘바닥을 향한 경쟁’이 가속
결국 “연료비가 싸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는 심리가, 시장 전체 운임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차량 가격·충전 인프라·정비 인력 등 전기화물차 관련 비용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이런 덤핑 경쟁은 중·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영세 화물차주의 이중·삼중 압박
전기화물차 도입을 선도하는 주체는 대기업 물류사, 택배사, 대형 3PL, 글로벌 화주사와 계약한 대형 운송사 등 ‘자본력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이들은 대량 구매로 차량 가격을 낮추고, 자체 물류센터·허브에 전용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개별 화물차주와 소규모 운송사는 다음과 같은 이중·삼중의 압박을 받게 됩니다.
- 경유 트럭 유지 시 : 연료비·정비비 부담은 계속 커지는데, 시장 운임은 전기화물차 기준으로 깎여 들어가 수익성이 붕괴
- 전기트럭 도입 시 : 차량 가격과 대출 부담, 충전 인프라 접근성 부족, 잦은 장거리 운행에서의 운행 제약 등으로 리스크 급등
게다가 대기업·대형 운송사는 화주와의 직계약 구조를 통해 높은 수준의 물량·단가를 확보하는 반면, 영세 사업자는 중간 위·수탁 구조 속에서 이미 압축된 단가를 또 한 번 나눠 받는 구조입니다. 이 상황에서 전기화물차 도입이 “효율성 향상”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가진 회사만 살아남는 구조”를 촉진할 위험이 큽니다.
배터리, 감가, 중고시장 리스크
전기화물차는 배터리가 수익 구조의 핵심 변수입니다. 일정 주행거리 이후 배터리 성능이 저하되면 교체 또는 잔존가치 하락이 불가피한데, 이 비용은 디젤 차량의 엔진·미션 정비 비용보다 더 크고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대기업은 장기 리스·운영리스, 제조사와의 계약, 잔존가치 보장 프로그램 등으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지만, 개별 사업자는 배터리 교체 시점에 사업 유지 여부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전기화물차 중고시장과 잔존가치 평가 기준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몇 년 운행 후 처분하려 할 때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받는 사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초기 투자비 회수가 어려워지고, 차량을 교체하면서 다시 대출을 일으켜 ‘부채의 사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재무 부담이 도산, 폐업, 강제 매각 등의 형태로 표면화될 수 있습니다.
플랫폼·앱 기반 화물 매칭과 ‘단가 인하 압력’의 결합
최근 몇 년간 화물·택배·퀵서비스 영역에서는 앱·플랫폼 기반 운송 매칭 서비스가 급증했습니다. 전기화물차는 이 플랫폼과 결합될 때 양면적인 효과를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경로 최적화, 공차율 감소, 실시간 배차 등으로 효율을 높여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시간 입찰·즉시 매칭 구조가 ‘최저가 경쟁’을 상시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기화물차를 대량 운용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등장할 경우, 전기화물차의 낮은 주행 비용과 플랫폼의 대규모 물량·데이터 기반이 결합되어 기존 운송사보다 훨씬 공격적인 단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개별 차주나 소규모 운송사는 플랫폼이 정한 단가에 종속되어 협상력이 떨어지고, 수익성은 더욱 악화됩니다. 과도한 경쟁이 누적되면, 플랫폼에 참여하는 기사들 사이에서도 ‘물량 쟁탈-단가 인하-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환경·정책 목표와 현장의 괴리
정책 측면에서 전기화물차 보급은 탄소중립, 대기질 개선, 국제 규제 대응 등 국가적 목표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환경 목표”와 “현장에서의 생존 경쟁”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합니다.
- 환경 측면 : 대형 디젤 트럭은 도심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기화 전환은 분명한 공익입니다.
- 산업 측면 : 정부·지자체·대기업은 전기화물차 보급 실적,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 관련 산업 육성을 강조합니다.
- 생활 현장 : 개별 화물차주·중소 운송사는 운임 하락과 비용 부담, 근로시간 증가, 불안정한 수입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립니다.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탄소는 줄었지만 사람은 더 힘들어진” 기형적인 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전기화물차를 통한 친환경 전환 자체에 대한 업계 반발과 저항이 커지고, 정책 신뢰도까지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과다경쟁·몰락을 피하기 위한 조건
전기화물차의 도입이 화물업계 전반의 과다경쟁·몰락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차량 보급 숫자를 늘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구조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방향입니다.
운임 구조 개선
연료·차량 종류와 무관하게, 합리적인 최소 운임 기준을 설정해 ‘덤핑 단가’를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친환경 차량 운임 인센티브 등을 도입하더라도, 최종 단가가 인건비·차량감가·유지비를 고려한 최소 수준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세 사업자에 대한 전환 지원
대출이자 지원, 배터리 보증·리스 프로그램, 공용 충전 인프라 우선권 제공 등으로 개별 차주가 전기화 전환 과정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일정 규모 이하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경영·재무 컨설팅, 운영 데이터 분석 지원 등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플랫폼·대형사의 책임 강화
플랫폼과 대형 운송사는 친환경 전환의 수혜자이자 구조 전환의 핵심 플레이어인 만큼, 최소 운임 준수, 적정 수수료, 안전·근로시간 기준 준수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공부문이나 화주 대기업도 무조건 최저가 입찰이 아닌, 친환경·노동환경·안정성을 반영한 다차원 평가 기준을 도입해야 합니다.
‘전기화’ 그 자체보다 중요한 질문
결국 전기화물차의 등장이 화물업계를 무너뜨리느냐, 아니면 한 단계 도약시키느냐를 가르는 핵심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전기화물차는 운송 비용을 줄이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지만, 그 도구를 어떤 규칙과 시장 구조 속에 집어넣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규제 없는 자유 경쟁, 플랫폼·대기업 중심 구조, 최소 운임 부재, 보호 장치 없는 보조금 위주의 보급 정책이 결합하면, 전기화물차는 과다경쟁과 영세 사업자의 몰락을 가속하는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정 운임 체계, 단계적 전환 지원, 공용 인프라, 영세 사업자의 재무 리스크 관리 장치가 함께 갖춰진다면, 전기화물차는 화물업계의 체질 개선과 고용 안정, 환경 목표 달성을 동시에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기화물차가 화물업계를 망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전기화물차를 어떤 규칙 속에서 도입하고, 그 과정에서 누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본질적입니다. 지금의 선택이 앞으로 10~20년 한국 화물·물류업의 생태계를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보면 좋은 정보
➡️ 소상공인 사장님, 배달비 · 택배비 최대 30만원 지원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