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 ‘가짜뉴스’ 논란은 상속세를 둘러싼 정책 공방이 경제단체와 정부·여당 간 정면 충돌로 번진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자산가 탈한국’ 보도자료
대한상의는 2026년 2월 초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한국의 고액 자산가들이 해외로 급증 이탈하고 있다”는 취지의 상속세 정책 대안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는 해외 기관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국 부자들이 높은 상속세를 피해 이민·해외 이전을 선택한다는 주장, 이를 완화하기 위한 상속세 개편 필요성이 담겼다.
문제는 이 통계가 충분한 검증 없이 인용되면서, 실제보다 과장된 ‘자산가 탈한국’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자료가 배포되자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상속세 완화를 위해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적 프레이밍”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의적 가짜뉴스’ 규정

논란을 결정적으로 키운 건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 엑스(X)에 글을 올려 대한상의 자료를 겨냥해 “사익 도모와 정부 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법률에 의한 공식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런 짓을 공개적으로 벌인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대한상의의 행위를 ‘고의적 가짜뉴스’로 규정했다.
또 “국민의 판단을 흐리려는 고의적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단순 실수나 과실이 아닌 정치·정책 목적의 여론조작 시도로 해석했다.
이 발언으로 사건은 단순 통계 오류를 넘어, ‘경제단체가 정부 정책을 흔들기 위해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유포했는가’라는 프레임으로 급격히 전환됐다.
대한상의의 사과와 해명
대통령의 직격탄 이후 대한상의는 주말까지 긴급회의를 열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 글이 올라온 지 약 3시간 만에 상속세 자료가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며 공식 사과문을 배포했다.
대한상의는 문제의 핵심을 “외부 기관 통계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인용했다”는 점으로 한정했다.
즉, 자료의 방향성과 정책 제안 자체는 정당하다고 보지만, 통계 검증이 허술해 결과적으로 왜곡된 인상을 준 점은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상속세 정책 대안을 건의하는 과정에서 통계 검증이 미흡해 혼란을 드렸다”며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정부·여당의 연쇄 질타와 감사 예고
대한상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정부 쪽 압박은 더 거세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공신력 없고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은 정보를 유통해 국민·시장·정부 정책에 심각한 혼선을 초래했다”며 “명백한 가짜뉴스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그는 소관 부처 장관으로서 대한상의에 대한 ‘즉각 감사’를 예고하며, 자료 생산·배포 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혔다. 경제 부처 수장들도 “제대로 안 된 통계를 활용해 자료를 만든 대한상의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가세했다.
결국 사건은 ‘한 경제단체의 미흡한 통계 인용’ 수준을 넘어, 정부가 직접 나서는 감사·징계 이슈로 확대됐다.
대한상의의 내부 쇄신·재발 방지 대책
여론이 악화되고 정부 감사 가능성까지 커지자, 대한상의는 내부 쇄신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핵심은 대외 보도자료와 정책 제언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 보도자료·정책 제안 자료에 대한 사전 ‘팩트체크 의무화’
- 외부 통계를 쓸 때 원자료 검증, 비교 분석 절차 강화
- 전 직원 대상 통계·자료 검증 교육 실시
- 작성·검토·승인 단계별 내부 검증 시스템 대폭 강화
특히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해외 출장 중에도 “책임 있는 기관인 만큼 데이터를 면밀히 챙겼어야 했다”며, 사무국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전면적 쇄신을 단행하라”는 메시지를 내리고, 조사 역량 강화와 내부 검증 시스템을 즉시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대한상의는 산업부 감사와 별도로 자체 조사도 진행해, 통계 선택·검증·문구 작성 과정에서의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남긴 의미
이번 ‘가짜뉴스’ 논란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라는 말이 더 이상 유튜브나 자극적 정치 콘텐츠만이 아니라, 경제단체·언론의 정책자료와 보고서에도 적용되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둘째, 경제단체의 정책 제언이 단순 민원 전달을 넘어 여론 형성과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계와 근거 검증에 대한 책임 기준이 훨씬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정책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한 장의 통계 그래프와 한 줄의 수치가 ‘정책 공격을 위한 도구인지, 공론 개선을 위한 근거인지’가 더 날카롭게 따져질 수밖에 없다.
셋째, 정부가 경제단체의 발표를 “민주주의의 적”이라까지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은, 향후 다른 단체·언론의 정책 비판에도 적지 않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 논쟁의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사실 검증과 책임 있는 통계 사용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을 어떻게 함께 지킬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번 대한상의 ‘가짜뉴스’ 사건은 결국 한 줄 통계를 둘러싼 검증 실패가, 정치·경제·언론 전반의 신뢰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까지 건드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hani+2
📌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1884년 설립되어 대한민국 경제 단체 중 가장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경제 단체다.
법적으로는 공공법인으로서 특수공익법인으로 분류된다.
정부와 경제계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추적인 기관이다. 사실 과거엔 대기업 중심의 한경협(당시 전경련)이 경제계 맏형 역할을 해 왔으나 2016년 가을 전경련이 최순실 국정 사태와 박근혜 탄핵 사태에 휘말리며 기존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면서 문재인 정부 이후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계 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